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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복귀글 / 인물1 - 제시리버모어

by 도승이 2026. 9. 3.

이직해서 다시 개발자로서의 삶을 살고있고 오랜만에 글을쓴다.

본래대로 블로그 방향은 개발일지로 가지만,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나 자신이
적응 못할까 싶어 남기는 말이다.

개인적인 경제/마켓분석 앱을 하나 만들고 있어서 공부중에있다.
오늘은 추세추종 전략을 쓰는 인물중 한명인 제시리버모어에 대해 알아볼까한다.

재미삼아 만드는 GPT 썸네일 (nanobanana2)

 


제시 리버모어

시장을 읽는 눈은 날카로웠습니다. 그런데 자기 돈을 지키는 데는 몇 번이고 실패했습니다.

제시 리버모어 얘기를 꺼내면 늘 1929년의 1억 달러부터 나옵니다. 정확히는, 주가 대폭락 때 그만큼 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공개된 감사 자료로 확인된 숫자는 아닙니다.

저는 그 숫자보다 1934년 기록에 더 오래 눈이 갔습니다. 당시 리버모어가 법원에 신고한 빚은 225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자산은 18만 4,900달러였습니다. 한때 시장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고 불린 사람이 몇 년 뒤 다시 파산 법정에 섰습니다.

그의 매매법보다 이 간격이 궁금했습니다. 시장을 읽는 규칙은 그렇게 꼼꼼했는데, 왜 자기 자본을 지키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을까요.

 


1억 달러가 아니라 225만 달러의 빚

1934년 3월 19일, TIME은 리버모어의 파산 신청을 보도했습니다. 부채는 2,259,212달러, 자산은 184,900달러였습니다. 기사에는 그가 큰 재산을 세 번 만들었고 그때까지 세 번 잃었다는 변호인 측 설명도 실렸습니다.

이 숫자도 그의 생애 전체를 보여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1929년 수익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기사에 채무와 자산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리버모어를 성공담으로만 읽으려다가 자꾸 이 기록에서 멈추게 됩니다. 큰돈을 벌 수 있었던 능력과 그 돈을 오래 지키는 능력은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출발은 시세판 숫자를 적는 일이었습니다

TIME의 회고에 따르면 리버모어는 1893년 보스턴의 증권사 Paine, Webber & Co.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맡은 일은 시세판에 가격을 옮겨 적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숫자를 매일 적다 보니 반복이 보였습니다. 리버모어는 가격 변화를 노트에 남겼고, 비슷한 움직임이 다시 나오는지 확인했습니다. 처음부터 기업의 적정 가치를 계산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가격이 실제로 어디로 가는지를 먼저 봤습니다.

이 시절 이야기는 에드윈 르페브르의 책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을 통해 유명해졌습니다. 주인공 래리 리빙스턴도 시세판 숫자를 외우고 자기 장부를 만듭니다.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은 리버모어에게서 영감을 받은 소설화된 전기입니다. 래리 리빙스턴의 모든 말과 행동을 리버모어의 직접 증언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맞히는 것보다 확인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리버모어가 1940년에 쓴 《How to Trade in Stocks》를 보면 시간과 가격이라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어느 가격을 넘었다는 사실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도 예상한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기다렸습니다. 그는 이런 기준점을 전환점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전환점의 정확한 숫자가 아닙니다. 자기 생각을 시장이 확인해 주기 전에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매수한 직후 가격이 기대와 다르게 움직이면 불편한 신호로 봤습니다. 자신의 분석을 지키려고 시장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말은 간단합니다. 생각을 먼저 세우고, 가격을 보고, 생각이 틀렸으면 물러납니다. 실제 돈이 걸리면 이 간단한 순서가 쉽게 뒤집힙니다. 사람은 보통 가격보다 자기 확신을 더 오래 붙잡으니까요.

 


틀린 거래에는 돈을 더 넣지 않았습니다

리버모어는 첫 거래에서 손실이 났다면 같은 방향으로 자금을 더 넣지 말라고 썼습니다. 가격이 내려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물타기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포지션을 늘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처음 산 가격보다 유리하게 움직여 판단이 맞았다는 근거가 생겼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보통 피라미딩이라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물론 이 방법도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이익이 사라질 때 커진 포지션이 그대로 부담이 됩니다. 전체 규모를 제한하지 않으면 확인하고 늘렸다는 말도 나중에는 변명이 될 수 있습니다. 리버모어의 삶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길었습니다

리버모어는 일 년 내내 거래할 필요가 없다고 봤습니다. 큰 기회는 자주 오지 않으니 조건이 맞을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시세는 계속 움직이고, 다른 사람의 수익 이야기는 매일 들립니다. 계좌에 현금이 있으면 뒤처지는 기분도 듭니다. 리버모어는 이 조급함이 거래를 망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종목을 너무 많이 보지 않았고, 자기 장부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큰 수익이 나면 일부는 계좌 밖으로 꺼내 두라고도 했습니다. 평가이익을 다시 전부 시장에 넣으면 지난 성공이 한 번에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본인도 그 원칙을 자주 어겼다는 겁니다

리버모어는 자기 책에 꽤 솔직한 실패를 남겼습니다. 면화 가격에 대한 결론을 너무 일찍 내린 뒤 2만 베일 규모를 사고팔았습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행동을 다섯 차례 반복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그의 유명한 명언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원칙을 몰라서 무너진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손실에 돈을 더 넣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도 조급해졌고, 다시 큰돈을 걸었습니다.

TIME은 그가 1915년에도 파산했고 이후 채무를 갚았다고 전했습니다. 1934년에는 또 파산 법정에 섰습니다. 여러 번 재기했다는 사실은 대단합니다. 동시에 한 번의 실수가 생존을 흔들 만큼 큰 포지션을 잡았다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의 매매법을 그대로 가져오면 곤란합니다

리버모어가 활동한 시장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를 만든 증권거래법은 1934년에 제정됐습니다. 그의 경력 대부분은 지금과 같은 공시와 감독 체계가 자리 잡기 전의 시장에서 쌓였습니다.

1929년에는 적은 증거금으로 주식을 사는 마진 거래도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연방준비제도 역사 자료에는 매수 금액의 10퍼센트만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주가가 급하게 꺾이자 높은 차입은 손실을 더 빠르게 키웠습니다.

100년 전 가격 패턴이나 진입 수치를 지금 차트에 그대로 대입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의 기록을 읽으며 확인할 건 있습니다. 내 생각을 확인할 조건이 있는지, 틀렸다고 인정할 기준을 정했는지, 한 번의 실수로 계좌가 무너지지 않게 크기를 제한했는지, 거래가 끝난 뒤 판단 과정을 남겼는지입니다.

이건 종목을 고르는 공식이 아닙니다. 실수했을 때 다음 거래를 할 돈이 남아 있게 만드는 점검에 가깝습니다.

 


결국 남는 건 한 가지입니다

리버모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장을 절대 만만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격을 기록했고, 기다렸고, 틀렸다는 신호가 나오면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를 그대로 따라 하지 않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정교한 규칙을 갖고도 자기 규모와 감정을 끝까지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큰 수익이 큰 위험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 사람에게서 가져가고 싶은 건 하나입니다. 무엇을 맞힐지 고민하기 전에, 틀렸을 때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먼저 정해 두는 것. 리버모어의 성공보다 실패가 더 오래 남는 이유입니다.


추세추종



참고한 자료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한 전략 해설입니다.



이런 주제와 개인적으로 개발하면서 겪은일 등
앞으로 블로그를 써나갈예정이다.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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